
킬링타임으로 가볍게 볼수있는 영화를 찾는도중, 이영화를 발견했다
"판의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나듯이 헤리포터와 비슷한 장르의 아이들과 가볍게 볼수있는 판타지일거라고 생각했다.
영화의 시작부분에 주인공 소녀의 죽음을 암시한다. 주인공 소녀의 코에서 흐르던 피가 다시 거꾸로 흐른다. 이때 필자는 메멘토를 떠올렸고, 처음장면이 마지막 장면에 반드시 연출될것이라고 생각하여 이영화는 어두운 영화일것이라 생각했다. 역시 마지막에 처음시작장면과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 어느 곳에도 시작도 끝도 없는것이다. 즉 지금 이순간이 시작이고 끝인것이다.
이 우울한 판타지는 어른들은 보이지 않는 소녀만의 환상에 의해 전개된다
소녀가 죽으면서 까지 보게되는 이 환상은, 마지막 부분에서 밝혀진 소녀의 생각속에서 펼쳐지는 판타지인지, 아니면 실제로 벌어지는 판타지 인지는 관객의 판단에 달렸다.
영화에서 소녀는 동생에게 깊은 관심과 사랑을 가진다. 그것은 괴물두꺼비가 살고있기때문에 썩고있는 나무에서 표현되는데 그 나무는 여성의 자궁을 표현한것으로, 어머니가 고통을 받는시기에 나무속의 괴물두꺼비를 없애는것으로 소녀는 동생을 보호한다. 판이 동생의 피를 원했을때 소녀는 판을 거부했고, 그럼으로써 자신은 죽게된다. 소녀는 동생을 사랑하므로 자신이 죽는것이 옳다고 생각한것다. 그때문에 캡틴을 뒤쫓아오게하고 캡틴에 의해 죽게된다. 그리고 나서 왕국에 돌아가 남의 피가 아닌 자신의 피로 돌아오게된 소녀의 현명한 판단을 칭찬받게된다.
이것은 소녀가 바라는 환상의 결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소녀의 싸늘한 시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감독은 잔인하게도 현실의 냉정함을 영화의 시작과 끝에 연출한다.
마지막 나레이션은 이 우울한 판타지를 만든 속죄의 의미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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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다 끝나고 22분을 울었다.
1944년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는 한 소녀의 판타지와 동화적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처절한 네오리얼리즘영화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전거도둑"보다 더 리얼하고 더 가슴이 찢어진다.
이 영화는 자신이 지하세계의 공주였다고 믿는 그 이름도 비극적인 오필리아라는 소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가혹한 현실로 인해 미쳐서 죽는 오필리아를 그린 밀레이의 "오필리아의 죽음". 그 그림을 연상시키는 처음과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를 판타지로 볼 수도 있지만 판타지가 아니라고 못을 박아주는 듯 하다.
(물론 지하세계 이야기가 모두 오필리아의 환상이냐 아니냐는 문제는 관객에게 열려 있지만, 나는 모두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 오필리아의 환상이라고 보았다.)
<판의 미로>에 나오는 순수한 소녀 오필리아도 죽음을 통해 감당하기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한 햄릿의 오필리어처럼 요정의 세계를 꿈꾸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잔인한 세상에 살고 있으며 죽으면서도 결국 지하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죽는다.
이 영화에서 동화 형식을 통해 보여주는 판타지 세계(고통과 거짓이 없는 지하왕국)는 현실 세계를 더욱 잔인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장치이며 그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오필리아가 완수해야 했던 임무도 그런 잔인한 현실 속에서 꼭 필요하며 반드시 잃지 말아야 할 용기, 인내, 희생이라는 인간의 아름다운 심성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이다.
파시즘이 횡횡하던 시절,
인간은 불평등하며 열등한 인종의 목숨은 쓰레기만도 못하다고 뼛속까지 믿고 있던 인종론자 히틀러의 모습이면서 그 시절 모든 독재자의 상징인 (이름도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함으로만 불리는) 대위, 그와 재혼을 한 어머니를 따라 독재정치에 대항하는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해 설치된 산 속 깊은 군부대로 오게 된 오필리아,
동화와 요정 이야기를 좋아하던 순수한 오필리아가 고통과 거짓이 없는 낙원과도 같은 세상에서 희생적인 공주가 되어 정의와 인정으로 그 세상을 통치하길 꿈꾸는 건
불평등하고 정의롭지 못하며 잔인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든 인간이 꿈꾸는 환타지가 아닐까.
깊이 있는 주제에 구성은 치밀하고 이야기는 흥미진진한 데다가 총격씬과 대위 입 찢어지는 씬등 촬영도 성의 있고 현실감 있으니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는 이 영화, 2006년 최고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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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길을 걷던 체게바라는 청진기 대신 총을 들었다.
헤밍웨이는 공화파를 지원하려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다.
그러나 아무도 역사를 바꾸지는 못했다.
길예르모 감독은 그런 역사의 비극을 들려준다.
그 비극이란 정부의 공식문서에 나오는 사망자 숫자 놀이가 아니다.
정부 대변인이 비정규직 숫자가 얼마니, 집없는 서민이 얼마니 떠들어 댄다해도 그것이
피부로 와 닿겠는가? 자신이 겪어보기 전에는.
판의 미로는 그래서 문서로 기록된 비극이 아니라
마치 전쟁을 겪은 우리 할머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침대 맡에서 손자손녀에게 들려주는
산 역사와 같이 느껴진다.
이에 비하면 동막골이나 태극기는 우리의 비극을 상품화한 느낌이 들어 부끄러움이
앞선다.
반지의 제왕을 다시금 느끼기 위해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허무함을 느끼겠으나
그 어찌 이영화에 돌을 던지겠는가, 돈에 욕심에 먼 배급사에 돌을 던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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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해리포터 류의 판타지가 아니다.
미션을 성공하면 공주가 된다는 말로 동심을 부추기지만,
일부 잔인한 장면들을 제외하더라도,
많은 어린이들이 재미있어 할 분위기는 아니다.
자장가라고 불러주는 것도 곡조가 암울하기 그지없다.
가사를 모른다고 한 것은, 가사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고,
오직 그 곡의 애잔한 느낌만이 중요하기 때문인 듯.
등장인물들은 주어진 현실에 대해 각각 다른 태도를 보인다.
생존을 위해 재혼을 한 엄마.
아버지의 그늘이 주는 두려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약자에 대한 우위로 표출하는 대위.
부당한 권력에 대항하는 시민군.
그리고,
타협하기에는 너무 어려서 도망을 택하는 오필리아.
영화는 판타지와 현실을 치우침이 없이 잘 섞어 보여준다.
100% 만족하며 살 수 없는 현실에서,
차마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꿈꾸는 우리 모두의 판타지다.
* 감독의 전작을 본 사람들을 위한 재미.
1. 효과음
요정이 등장할 때 <미믹>의 바퀴벌레 괴물이 내는 기괴한 소리가 난다.
벌레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처음엔 <미믹>이 떠올라 괴로웠지만,
<판의 미로>에서는 주인공을 도피처로 이끌어주는 도움의 소리.
2. 요괴.
두번째 미션의 요괴는 <헬 보이>에서의 수중 돌연변이 캐릭터를 떠올리게 한다.
알고보니 <미믹>에서 바퀴벌레 역할까지 셋 모두 같은 배우.
얼굴없는 천재.
3. 비주얼
그만의 독특한 음울함이 영화 전체에 깔려있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 내용출처 : fremder75,seeleaf,mousedog님들 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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